'선험적'이라는 말은 경험에 앞선다는 뜻이다. 따라서 선험적 지식이란 감각적 경험을 넘어서는 깨달음으로부터 오는 지식. 즉 일일이 경험하고 관찰하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타고난 본성에 의해 알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1 더하기 2는 3'이라든가 '곡면이 아닌 평면 위에 그려진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와 같은 아주 분명한 수화적인 원리들이나 '긍정의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다'와 같은 논리학의 원리들이 대표적인 선험적 지식에 속한다.
수학과 달리 과학은 우리를 둘러싼 경험적 세계에 관한 학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제1원리가 선험적으로 얻어져야 한다는 데카르트의 주장은 궤변처럼 들리기도 하며, 이런 이유 때문에 데카르트를 과학과는 거리가 먼, 뜬구름 잡는 철학자로 속단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가 선험적 방법론을 고수했던 이유를 제대로 알고 나면, 데카르트야말로 가장 엄격한 방법으로 과학을 하고자 했던 과학자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테카르트는 제1원리의 책임이 막중한 만큼, 절대로 들릴 수 없는 것에서 제1원리를 얻어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세상 모든 지식 유형들의 신빙성을 의심해 보고, 틀릴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지워 나갔다. 가장 먼저 의심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은 감각 경험으로 얻어진 지식들이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감각 경험에 의해 많은 지식을 얻고 그것을 바탕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사실 감각 경험에 의한 지식처럼 틀리기 쉬운 것도 없다.
오른손은 섭씨 50도의 물에, 왼손은 섭씨 10도의 물에 담가 보자. 그리고 1분 후 두 손을 다 섭씨 30도의 물이 담긴 대야에 담그면 어떻게 될까? 분명 한 대야에 있는 똑같은 온도의 물을 경험하고 있는데 왼손은 따뜻하게, 오른손은 차게 느껴질 것이다.
또한 누구나 남의 말을 잘못 알아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닐 것이며, 감기에 걸리면 냄새와 맛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 것이고 실제와는 다른 시각 경험을 할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감각 경험은 언제든 틀릴 수 있으므로, 데카르트는 제1원리가 감각 경험으로부터 얻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감각 경험으로부터 얻어진 다른 원리들 역시 오류 가능성이 있는 지식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제1원리의 후보에서 제외했다.
데카르트는 다른 유형의 지식들도 의심해 보았고, 수학적 지식이나 논리학 지식 역시 의심의 여지가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실제로는 2 더하기 2가 4가 아닌데, 우리로 하여금 4라고 믿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전지전능한 악마가 있어서 우리의 모든 생각을 조종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의심도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유형의 생각들을 의심해 본 끝에, 데카르트는 "내가 지금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지전능한 존재에 의해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졌든 아니든, 내가 지금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니까 말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언은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 말에 이르게 한 체계적인 의심의 과정을 "방법론적 회의"라고 부른다.
이렇게 절대적이고 의심할 수 없는 것에서부터 제1원리들이 얻어져야 한다는 데카르트의 생각은 그 자체로는 매우 엄격하고 훌륭한 과학 활동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과학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단점이 있었다. 왜 그런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다 의심하고 버린다고 해도,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라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신의 존재의 특성에 의해 세 가지 자연법칙을 얻었으며, 그것들을 제1원리로 삼았다.
데카르트의 세 가지 자연 법칙 중 첫 번째는 어떤 물체가 등속 운동을 하고 있다면, 그 물체는 등속 운동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자 한다는 것인데, 데카르트는 이 법칙이 신의 불변성(불역성)과 단순성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법칙은 운동은 본질적으로 직선 운동이므로 원운동 하는 물체는 원의 중심에서 계속 멀어지려고 한다는 것이며, 세 번째 법칙은 한 물체가 더 강한 물체와 충돌하면 운동량을 잃지 않지만, 더 약한 물체와 충돌하면 그 차이만큼 운동량을 잃는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두 번째 법칙은 신의 불변성에서, 그리고 세 번째 법칙은 신이 작용하고 있음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신의 특성을 운동의 특성으로 바로 연결시키는 비약도 문제지만. 데카르트의 선험적 방법론은 세상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빈약한 원리들만 얻을 수 있다는 큰 약점이 있었다. 데카르트 역시 이 약점을 잘 알고 있었으며, 나머지 부분들은 경험 관찰을 통해 메워야만 한다고 시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