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 다음 세대의 과학자인 뉴턴은 데카르트가 남긴 자연 법칙과 운동 법칙 등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제1원리의 획득 방법에 관해서는 데카르트와는 정 반대의 주장을 폈다. 뉴턴은 제1원리도 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들로부터 도출되어야 하며. 그런 방식으로 얻은 지식이 최고의 지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경험들로부터 도출하는 절차를 밟지 않고 세계에 관한 일반적인 원리를 말하는 진술을 '가설'이라고 불렀고. "나는 가설을 만들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데카르트의 선험적 방법론을 비판했다.
연역 추론의 한계와 귀납 추론
뉴턴이 말하는 '경험으로부터 원리를 도출하는 절차'란 데카르트보다 35년 먼저 태어난 영국의 철학자이자 과학자 베이컨이 제시한 귀납법이다. 베이컨의 귀납법은 '노붐 오르가눔'('새로운 도구'라는 뜻)이라는 책에 실려 있다. 이 제목은 연역 추론이 강조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오르가눔'('도구'라는 뜻)의 방법론에 반대하고 그것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지식 축적 방법을 제안하겠다는 베이컨의 포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뉴턴이야 데카르트의 방법론의 한계를 알아채고 그에 반대하여 귀납법을 사용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베이컨은 데카르트보다 한 세대 앞선 사람이었는데 왜 연역 추론이 강조되는 방법론을 반대했을까? 베이컨이 뛰어넘겠다고 했던 연역 추론의 한계는 무엇일까?
연역 추론은 아무리 추론을 거듭해도 전제가 참이기만 하면 결론의 참이 보증된다는 장점을 지니며, 이 장점은 결론의 내용이 이미 대전제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 점은 커다란 약점 또한 낳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지식의 확장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계속 연역 추론만 하고 있었다면 우리의 지식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축적되거나 확장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개별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었던 대부분의 대전제들마저 생길 수 없었을 것이다. 베이컨은 바로 이러한 점들을 꿰뚫어 보았고, 지식의 축적을 가능하게 하고 대전제로서의 원리들을 생기게 할 수 있는 '새로운 생각 도구'로 귀납 추론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물론 베이컨이 귀납 추론의 창시자는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귀납 추론에 관해 논의한 적이 있었고, 베이컨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들로부터 이어지는 지적 전통에서 귀납 추론의 역할이 지나치게 축소되고 연역 추론만이 강조된 나머지, 중세와 근대 초기에 와서는 학문이 현실과 심각하게 동떨어지게 되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베이컨은 그 처방으로
귀납 추론을 제시했다.
보편적인 사실에서 출발하여 개별적인 사실로 나아가는 연역 추론과는 반대로, 귀납 추론은 아래 예로 든 식 처럼 개별적인 사실들에서 출발하여 보편적 인명제를 이끌어낸다.
[개별 명제 1] 첫 번째로 관찰한 백조는 희다.
[개별 명제 2] 두 번째로 관찰한 백조는 희다.
[개별 명제 3] 세 번째로 관찰한 백조는 희다.
[개별 명제 4] 네 번째로 관찰한 백조는 회다.
. . .
[개별 명제 n] n번째로 관찰한 백조는 희다.
--------------------------------------------------------
[보편 명제] 모든 백조는 희다.
위의 식 에서는 전체들의 어디에도 결론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 식의 결론은 추론을 하기 전에는 모르던 사실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추론을 통해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었으므로 지식의 내용이 늘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이리한 이유로 귀납 추론은 '내용 확장적 추론'이라 평가된다.
귀납 추론의 또 다른 특징은 전제로 사용된 개벌 현상들의 특징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일종의 규칙성이 결론으로 얻어진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현상들을 하나의 법주로 묶을 수 있게 해 주는 규직성을 우리는 '법칙'이나 '원리라고 하므로, 귀납 추론은 그 자체로 새로운 법칙이나 원리를 만드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뉴턴과 같은 귀납주의자들은 바로 이러한 점을 강조하였다. 올바른 귀납을 통해 자연의 규칙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원리로 세우지 않는 지식활동은 과학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올바른 귀납일까? 베이컨은 편견 없이 이루어지는 귀납만이 올바른 것이라 주장하며. 사람이 흔히 빠지기 쉬운 편견들을 '우상'이라 부르며 우상들을 4가지로 분류하였다.
베이컨이 경계한 첫 번째 편견은 '종족의 우상'인데, 이것은 인간이라는 종족에 얽매이기 때문에 생기는 선입견을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더 쉽게 믿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선입견에 빠지면 현상을 제대로 관찰할 수 없고. 올바른 귀납이 행해질 수 없다고 베이컨은 경고한다.
두 번째의 편견은 플라톤도 이야기한 바 있는 '시장의 우상'인데, 이것은 개인의 좁은 세계를 전체라고 믿기 때문에 생기는 편견을 말한다. 이러한 종류의 편견에 빠지지 않으려면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세 번째 편견인 '동굴의 우상'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 때문에 생길 수 있는 편견이다. 언어는 언제 어디서든 혼동될 수 있고 잘못 이해될 수도 있으므로 관찰을 하거나 그것을 일반화할 때는 언제나 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마지막 편견은 '극장의 우상'으로, 앞서 학문했던 사람들이 이루어 놓은 것에 매몰되어 생기는 것이다. 베이건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후예들이 극장의 우상에 사로잡혀 연역 추론 외의 다른 것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