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없는 수집은 가능한가?
귀납적 방법론은 개벌 현상들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베이건은 이 작업이 '편견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고, 뉴턴 시대의 과학자들은 물론 현대의 사람들까지도 '편견 없이 성실하게 많은 자료들을 수집하는' 고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과학의 신뢰성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편견 없는 관찰과 수집이라는 것이 말만큼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귀납 추론의 예인 아래 [식 3]의 백조 관찰을 보자.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수많은 동물 중 백조에 집중하고, 또 백조의 여리 특성 중 색깔에 집중하는 것도 편견에 의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의 수많은 현상들 중 지금은 백조가 중요하고, 또 일단은 백조의 색만 관찰해야 한다'는 편견이 없다면 [식 3]을 있게 한 관찰은 시작될 수 조차 없기 때문이다. 어떤 자료를 수집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 자체가 편견이 있어야만 가능한 행동이므로, 자료 수집은 편견이 있어야만 시작할 수 있다. 따라서 귀납적 방법은 첫 단계부터 절대로 이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개별 명제 1] 첫 번째로 관찰한 백조는 희다.
[개별 명제 2] 두 번째로 관찰한 백조는 희다.
[개별 명제 3] 세 번째로 관찰한 백조는 희다.
[개별 명제 4] 네 번째로 관찰한 백조는 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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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명제 n] n번째로 관찰한 백조는 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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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 명제] 모든 백조는 희다.
일단 주제가 정해지지 않으면 자료 수집도 시작할 수 없으니, 주제를 정하는 단계에서의 편견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다음 과정, 즉 수집하는 활동에서는 편견을 제거할 수 있는가? 그것 역시 불가능하다. 일단 '백조의 색깔 관찰'을 주제로 정했다 해도,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관찰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를 결정할 때에는 편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선 백조의 '색깔'이라는 문제부터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백조는 휠 것이라는 선입견 없이 백조의 색깔에 관한 자료를 수집한다면, 백조 온몸의 모든 깃털 하나하나를 다 꼼꼼히 관찰하고, 아주 미세한 색의 변화도 빠짐없이 기록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작업이다. 그런데 "백조는 대부분 흴 것이다"라는 편견을 가지고 작업을 한다면 어떨까? 몸 색이 흰 백조는 그냥 기록만 하고, 흰색이 아닌 색처럼 보이는 백조만 더 면밀하게 관찰하면 되므로 작업의 양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자연 관찰은 이처럼 잠정적인 예상, 즉 가설을 희미하게나마 마련한 후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 정도의 희미한 가설은 있어야 자료 수집 활동에 나설 수 있으니 이 정도의 문제는 남아 있다. "모든 백조는 희다"는 잠정적인 가설에서 출발한다면 백조만 관찰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논리적으로 따져 보면 그렇지 않다. "p이면 q이다."라는 명제는 그 대우 명제인 "q가 아니면 p가 아니다."와 논리적으로 동치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우리의 예에 적용해 보자.
"모든 백조는 희다."는 대우 명제 "희지 않으면 백조가 아니다."와 동치이다. 따라서 "모든 백조는 희다"라는 가설을 가지고 자료를 수집한다는 것은 "희지 않으면 백조가 아니다."라는 가설 아래 자료를 수집하는 것과 동일하다. 따라서 백조를 잡아서 색이 흰가를 확인하는 작업과 마찬가지로 희지 않은 사물을 선택하여 그게 백조가 아닌지 맞는지를 확인하는 작업 역시 논리상으로는 "모든 백조는 희다"라는 가설을 위한 좋은 자료가 된다는 결론이 얻어진다.
위의 결론이 우리의 직관과는 맞지 않으므로, 관찰 대상을 백조에 한정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백조만 보기로 결정한 후라면 이제 편견 없는 자료 수집이 가능해질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백조들을 다 관찰할 수는 없기 매문이다. 과기에 이미 죽어 버린 백조들은 박제가 남아 있지 않은 한 관찰할 수 없으며, 미래에 태어날 백조 역시 지금 우리는 관찰할 수 없다. 과거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될 수 있는 한 많은 백조를 관찰하려면 미래의 백조들이 태어나길 기다려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백조라는 종이 절멸될 때까지 백조 관찰을 계속하는 것인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관찰의 기간도 제한할 수밖에 없는데, 이 기간을 특정하는 것 역시 편견에 의한 활동이다.
관찰 기간을 한정한다 해도, 그 기간 동안 세상 모든 곳을 다 훑으며 백조를 찾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관찰 지역도 한정시켜야만 하는데, 이것도 편견이 있어야만 기능하다. 이렇게 차근차근 생각해 본다면, 편견 없는 자료 수집이라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아예 불가능한 요구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