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알려져 있는 보편 중력의 법칙은 귀납적 일반화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사물들 사이에 중력이 존재한다는 개별 사실들로부터 모든 사물들 사이에 중력이 보편적으로 작용한다는 원리로 나아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턴의 모든 과학적 업적이 다 그러한 절차를 통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특히 뉴턴의 광학은 빛이 드러내는 여러 가지 특징적인 현상들로부터 "빛은 작은 입자들로 되어 있다."라는 원리로 나아갔는데, 이것은 귀납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없다.
1. 귀납적 일반화와 실제 과학 원리들의 차이점
뉴턴이 광학의 원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재구성하여 추론식의 형태로 나타내면 아래의 [식 4]가 된다. 백조에 관한 귀납 추론의 예를 단순하게 표현한 [식 3]과 [식 4]를 비교해 보자.
첫 번째 백조는 희다. 빛은 직진한다.
두 번째 백조는 희다. 빛은 굴절한다.
. . . 빛은 반사된다.
---------------------------- [식 3] ---------------------------------------------- [식 4]
모든 백조는 희다. 빛은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진다.
귀납 추론인 [식 3]의 결론에 등장하는 단어들 중 '모든'을 제외한 것들, 즉 '백조'와 '희다'는 모두 전제의 문장들에도 그대로 사용되었다. 전제에 나오는 주요 단어들이 결론에도 그대로 사용된다는 것은 귀납 추론의 특징 중 하나이다. 그레나 [식 4]는 그러한 특징을 보이지 않는다. 결론의 주요 단어인 '작은 입자들'이라는 말은 전제들의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사실 과학 원리들 중 많은 것들은 [식 3]보다는 [식 4]와 같은 특성을 보인다. 여러 가지 특이한 현상들에서 출발하여 원리로 나아가는 경우라 해도, 그 현상들에 등장하는 단어들로 원리가 구성된다기보다는 그 현상들의 이면에 숨은 것으로 생각되는, 보이지 않는 어떤 특성이 원리로 등장하는 것이 보통이다. 다시 말하자면, 대부분의 과학 원리는 한 종류의 여러 사실들을 종합한 단순한 일반화라기보다는, 이질적으로 보였던 여러 현상들을 다 아우를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원인에 관한 추측이 더해진 주장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식은 부모의 여러 특성들을 닮는다는 사례들로부터 "형질들을 대물림해 주는 유전 물질이 존재한다"라는 원리를 얻어 낼 경우, '유전 물질'이라는 핵심 단어는 사례들을 기술하는 문장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2. 가설 연역적 방법이란
뉴턴 자신은 경험에 근거한 귀납적 일반화와 동일하지 않은 '가설'을 세우지 않는다고 말했으나. 광학을 연구할 때는 "빛은 작은 입자들로 되어 있을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전제로 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빛을 이루는 알갱이는 그 누구도 직접 관찰한 일이 없으므로. 이 가설은 경험만으로는 얻어질 수 없다. 추측이 더해져야만 얻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사실, 추측이 포함된 가설에서 시작하는 과학 활동은 고대부터 있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을 신화적인 것에서 과학적인 것으로 바꾸었다는 평가를 받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도 경험적 일반화와는 차이가 있는 주장들을 많이 했다. 그 예로,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는 탈레스의 말을 곱씹어보자. 그가 물에서 여러 종류의 물질들이 만들어지는 장면을 실제로 많이 관찰한 후 귀남적 일반화만을 통해 이런 원리를 주장했겠는가? 그 후에 만들어진 많은 과학 원리들 역시 경험적 일반화와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경험적 일반화에 약간의 상상력이 더해지기도 했고, 때로는 과감한 추측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하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나 뉴턴은 물론이고 그 이후의 많은 과학자들도 추측이 가미된 가설들을 전제하고 연구를 진행했으며, 그 중 좋은 성과로 이어진 연구도 많았다. 따라서 그러한 방식의 과학 활동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과학 방법론이 절실하게 필요해졌다.
그런데 이처럼 '추측'이 과학에 개입함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면 매우 곤란한 문제가 생긴다. '성실하고 수고로운 사실 수집에서 출발한 귀납적 일반화'라는 것은 비록 논리적으로 완벽하지는 않지만 일반화 명제에 원리나 법칙의 지위를 줄 수 있을 정도의 권위를 가지는 방법이었던 반면, '추측'은 그러한 권위를 줄 수 없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추측이 포함된 가설이 어떻게 법칙이나 원리의 지위를 얻을 수 있는가에 관한 철학적 뒷받침이 필요했고, 이것이 충족된 방법론은 영국의 철학자 휴얼에 의해 제시되었다.
휴얼은 뉴턴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따라서 그는 뉴턴이 존중했던 귀납적 방법을 완전히 부정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뉴턴의 과학 방법을 완전히 담을 수 있도록 베이컨의 귀납적 방법론을 보완하려고 했다.
베이컨과 뉴턴의 귀납적 방법론이 정당화의 맥락보다는 발견의 맥락에 치중하는 방법론임은, 현상들을 주의 깊게 많이 수집하여 일반화하면 그 결과가 바로 '원리'의 이름을 얻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추측'이 개입되면 발견의 맥락에서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가설의 신뢰도를 시험하는 과정이 추가로 드러나야 했다. 휴얼은 실제 과학에서는 정당화의 과정을 거쳐야 가설이 원리나 법칙의 지위로 올라갈 수 있음을 간파했고, 정당화의 과정이 좀 더 섬세하게 표현된 방법론을 제안했다.
휴얼이 제시한 방법론의 정당화 절차도 기본 논리는 귀납적 방법론의 정당화 절차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직은 가설에 머물러 있는 보편 명제에서 연역을 통해 개별 예측 사례를 도출하고, 그것을 실험이나 관찰 결과와 비교하는 것이다. 예측과 관찰(실험) 결과가 일치하면 그 가설은 원리나 법칙의 지위를 얻게 되고, 일치하지 않으면 다른 보편 명제를 가설로 세워 다시 시험한다. 이러한 방법은 이론이 아닌 가설에서 출발하여 연역을 이용한 정당화를 거치므로 '가설 연역적 방법'이라 불린다
앞서 언급했듯이, 가설 연역적 방법은 고대부터 실질적으로 사용되던 방법이었다. 그러나 독자적인 과학방법론으로 정립되지 못한 채 뉴턴 이후 잠시 묻혀 있다가, 1830년대부터 휴얼 등의 철학자들에 의해 다시 주된 과학적 방법론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부터 현대의 것과 가까운 모습으로 다듬어졌고, 1920년대부터 과학철학의 흐름을 주도하기 시작했던 논리 실증주의자들에 의해 주된 과학방법론으로 받아들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