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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퍼의 반증주의 2

by 코코아100 2024.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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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론의 조건들

과학을 진보시킬 방법론을 만들고자 했던 포퍼의 의도를 이해한다면, 포퍼가 보는 좋은 과학 이론이란 과학을 진보로 이끄는 이론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 활동 과정에서 이론은 계속해서 시험을 받는다. 이때 시험을 계속 통과하는 이론은 계속 용인될 것이며, 한두 번의 시험으로 반증되어 버리는 이론보다는 더 잘 용인되는 이론이 확실히 더 좋은 이론, 즉 세계에 관해 더 정확하게 예측을 내놓는 이론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세상이 끝날 때까지 용인될 것이 확실한 이론, 바꾸어 말해 반증이 불가능한 이론이 가장 좋은 이론이라고 보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포퍼의 반증주의를 완전히 오해한 것이다. 

 

포퍼는 반증 가능성이 높으면서 좀처럼 반증되지 않는 이론일수록 좋은 이론이라고 말했다. 이 발을 잘 이해하려면 우선 '반증 가능성'과 '반증되었음'의 차이를 알아야 하고, 반증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알아야 한다.

 

반증 가능성이란

반증이 가능하다는 것은 가설이 경험적인 시험을 통해 반박될 수 있음을 말한다. 가설로부터 구체적인 예측을 도출할 수 있고, 그 예측을 시험에 부칠 수 있으며, 그 결과에 따라 용인되거나 반증될 수 있어야만 반증 가능한 가설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모든 동물은 관찰 불가능한 악마의 조종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가설은 반증 불가능하다. 이 가설로부터 "내 앞의 이 강아지는 관찰 불가능한 악마의 조종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개별 예측 사례를 도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강아지가 관찰 불가능한 악마의 조종에 의해 움직이는지 아닌지는 어떻게 해도 시험할 수 없으므로, 이 예측을 나오게 한 가설은 영원히 반증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가설은 틀린 것이라고 밝혀지지는 않겠지만, 과학의 발전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는다. 예측을 시험할 수 있는 실험을 설계하게 하지도, 관찰 계획을 만들게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리적으로 반증이 불가능한 이론은 과학적인 행위도 하지 않게 만드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러한 이론은 절대로 과학 이론이 될 수 없다. 실제로 포퍼는 과학 이론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을 반증 가능성(시험 가능성)이라고 보았다.

 

반증 가능성이 높은 가설과 낮은 가설

아래의 두 가설 중 어느 것이 더 반증 가능성이 높을지 생각해 보자.


항성 X 주위를 도는 행성이 있다.           [가설 1-1]
항성 X 주위를 도는 행성이 7개 있다.    [가설 1-2]


[가설 1-1]은 항성 X 주위를 는 행성이 있기만 하면 반증되지 않는다. 행성이 1개인 경우에도 반증되지 않고, 2개인 경우에도 반증되지 않으며, 100개인 경우에도 반증되지 않는다. 오직 행성이 하나도 없을 경우에만 반증된다. 그러나 [가설 1-2]의 경우에는 행성이 없을 경우는 물론이고 1개, 2개, 100개일 경우에 다 반증된다. 오직 행성이 7개일 경우에만 반증되지 않는다. [가설 1-1]보다는 [가설 1-2]가 더 많은 경우에 반증되는 것이다. 따라서 [가설 1-1]보다 [가설 1-2]가 반증 가능성이 더 높다. 그리고 이 예로 미루어 본다면 좀 더 구체적인 주장을 하는 가설일수록 반증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구체성의 정도가 반증 가능성에 차이를 부여하는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기원전 10세기쯤에는 다음의 가설들 중 어떤 것이 더 반증 가능성이 높았을지 생각해 보자.

태양은 지구 주위를 돈다.      [가설 2-1]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      [가설 2-2]


지금의 우리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천문 관측 자료가 많이 쌓이지 않았던 먼 과거에는 태양을 비롯한 천체들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태양이 '뜨고' '지는' 현상은 매일 일어나므로 [가설 2-1]을 용인해 주는 사례는 계속 쌓이지만 [가설 2-2]를 분명히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가설 2-2]로부터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면, 즉 움직인다면 지구에 타고 있는 우리들은 가만히 서 있어도 심한 속도감을 느껴야 한다."는 예측을 이끌어내고, 실제로 우리는 가만히 서 있을 때는 속도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증거로 삼아 [가설 2-2]가 반증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예로 미루어 보면, 가설이 제안될 당시의 과학 수준이나 주류 이론의 내용과 동떨어진 '대담한 가설'일수록 반증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좀처럼 반증되지 않는 가설이란

앞의 두 가지 사례를 종합해 보면, 대담하고 구체적인 가설일수록 반증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담하고 구체적이기만 해서는, 즉 반증 가능성이 높다는 조건만 만족해서는 포퍼가 생각하는 좋은 이론이 될 수 없다.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는 직정 1cm의 파란색 공이다."라는 가설을 생각해 보자. 이 가설은 매우 대담하고 또 구체적이다. 따라서 반증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이 가설은 과학자 사회의 심각한 실힘까지 가기도 전에 쉽사리 반증되어 버린다. 우리 눈으로도 파란색이 아니면서 직정 1cm 미만 물체들을 쉽게 관측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가설이 단 한 번의 시험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는 이유는 세계에 관해 너무도 부정확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 관해 부정확한 예측을 내놓는 이론보다는 정확한 예측을 내놓을 수 있는 이론이 더 좋은 이론이다. 그리고 정확한 예측을 많이 내놓으면 더 많은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좀처럼 반증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포퍼는 좋은 이론이 갖추어야 할 덕목에 반증 가능성이 높아야 한다는 조건과 그럼에도 좀처럼 반증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함께 넣은 것이다.


어떤 이론이 포퍼의 이 두 조건을 만족한다면, 그 이론은 세계에 관해 정학한 예측을 내놓아서 현재 상황에서 유용하게 사용됨과 동시에,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곳으로 대담하게 눈을 돌리게 하여 과학의 영역을 넓힐 것이다. 또 그 새 영역에 관해서도 구체적인 예측을 도출함으로써 우리가 시험해야 할 문제를 명확하게 제시해 주는 역할까지 수행할 것이다. 이는 그야말로 완벽하고 이상적인 이론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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