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과학사
과학사는 자연과학의 변천과 발달, 그리고 그 문학적 · 사회적 이미를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과학사가 어떤 학문인지 알기 위해 먼저 국사나 세계사 시간에서 역사 시간에 무엇을 배우는지 생각해 보자.
역사 시간에 우리는 과거의 어느 시기에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살핀다. 이는 1592년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났으며, 1894년에는 갑오개혁이 일어났다는 사실 등을 배우는 것을 말한다.
과거의 사람들이 썼던 책이나 문서들, 비석에 새겨진 기록들, 무덤, 사진 등의 자료들은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기록들을 바탕으로 여러 사건들이 이러난 시기를 알아내고 이를 순서에 따라 배열해 연대기를 만든다.
하지만 연대기를 만든다고 해서 역사 연구를 다 했다고 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사건들이 '왜' 일어났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즉 이들은 여러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난 원인과 결과를 밝혀낸다.
이를 위해서는 역사적 사건들에 관련된 주체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밝혀내야 하며, 또한 그런 관계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특정한 역사적 사건으로 이어졌는지를 알아야 한다.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여러 역사적 사건들이 어떤 문학적, 사회적 배경 아래에서 일어났는지도 이해하고자 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역사적 사건들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도 중요하다. 임진왜란이 언제, 왜 일어났는지를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임진왜란이 당시 조선 사회에서 어떤 의미가 있었으며 이후에 어떤 변화를 낳았는지도 알아내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세계 각 지역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었는지를 함께 비교해 본다면 더 넓은 시각으로 임진왜란의 의미를 파악해 볼 수 있다.
역사학자들이 모든 사건을 원인과 결과, 그리고 그 의미 등을 같은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학자들마다 다양한 해석 관점을 가지기 때문에 이들이 가진 역사 해석 틀에 따라 역사적 사건들은 조금씩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학사란 어떤 학문일까? 한마디로 과학의 역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사의 연구 방법은 일반적인 역사 연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반적인 역사 연구에서와 마찬가지로 과학사는 과학적 사전이나 변화들이 언제, 어디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났는지를 밝힌다.
또한 각각의 과학적 사건들이 어떤 원인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났고, 어떤 사회 · 문화적 요소들이 그러한 사건들에 개입했는지도 밝힌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러한 과학적 사건들이 전체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도 고려해보고자 한다면 더욱 의미 있는 과학사 연구가 될 것이다.
1953년에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구조를 발견했던 것을 생각해보자. 과학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DNA의 구조를 발견하기까지의 역사적 과정, 당시 생물학계에 어떤 움직임들이 있었는지, 이 두 사람은 그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그리고 DNA 구조의 발견이 이 후 생물학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등을 분석한다.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을 역사학자라고 하는 것처럼, 과학사를 연구하는 사람을 과학사학자라고 부른다. 역사학자들처럼 과학사학자들도 역사를 해석하는 다양한 해석 틀이나 관점을 가진다. 이들이 어떤 관점을 가지느냐에 따라 과학의 역사에 대한 해석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과학사를 하기 위해 과학의 내용을 잘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학사는 역사 연구의 방법과 관점을 과학의 역사에 적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을 알고 있는 것이 좋다. 과학의 역사에 대한 연구와 달리 과학 자체에 관한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탐구는 과학철학이라는 학문 분야에서 이루어진다.
과학과 과학 활동이라는 같은 대상을 연구함에도 불구하고, 과학사와 과학활동은 서로 다른 연구방법을 택한다. 뿐만 아니라 과학사와 과학철학은 추구하는 목표도 다르다.
과학사는 특정한 시점에 특정한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을 이해하고 해석하고자 한다. 그리고 과거의 과학자가 무엇을 생각했고 어떻게 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그간은 생각의 의미와 영향이 무엇인가를 알고자 한다.
반면에 과학철학자는 특정한 과학적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요인들보다는 이런 요인들 이면에 존재하는 논리적인 흐름을 파악하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철학자는 과거의 과학 이론들 속에 들어있는 철학적 핵심 요소들을 찿아내 분석하고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