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라는 말이 신뢰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과학 활동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체계적인 방법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떠한 방식의 활동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체계적인 방식일까?
수백 년 전의 과학자와 철학자들도 이 질문에 진지하게 매달렸으며 나름대로 답안을 내놓았다. '고전적 과학 방법론'이라 불리는 과거의 방법론들은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만들어진 이론만이 과학적인 이론이라 보았으므로, 이론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여러 가지 엄격한 제약을 두었다. 고전적 과학 방법론에서는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선험적 방법론과 베이컨과 뉴턴에 의한 귀납적 방법론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과학 지식 체계가 형성되는 방식
1993년, 국내의 한 침대 회사가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내놓았다. 그 회사의 내부 자료에 의하면 그 광고를 하고 난 후 매출은 30% 정도 올랐으며, 시장 점유율도 두 배가량 증가하였다.
그 후 너도 나도 '과학'을 앞세운 광고를 만들었고, 지금은 '침대과학', '피부과학', '청소과학' 같은 말은 물론, 유명 대학교의 실험 팀을 이끌며 실제 연구를 하고 있는 과학자들의 이름도 광고에서 넘치도록 볼 수 있다. 과학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그래서 다른 활동보다 성공적일 것이라는 인상이 보편적으로 퍼져 있지 않았다면 이런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과학이 이러한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은 과학이 지니는 어떤 특수성 때문이며, 그 특수성은 과학의 방법 때문에 생긴다고 여겨져 왔다. 과학이 성공적인 이유, 즉 과학 활동으로 만들어진 이론이나 가설들이 경험된 현상들을 잘 설명하고 아직 관찰되지 않은 현상들을 잘 예측하는 이유는 과학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수행되기 때문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과학에서 사용되는 방법, 즉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과학적 방법'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과학은 여러 가지 복잡한 절차를 거쳐 이루어지는 활동이며, 그로 인해 얻어진 지식들도 복잡한 체계를 이루고 있다. 많은 철학자들은 과학 활동이 실행되는 방법뿐 아니라 지식들이 모여서 한 분야의 과학이라는 커다란 체계를 이루는 방법에도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믿었고, 본격적인 과학적 방법론의 첫 걸음, 즉 지금 우리가 '고전적 과학 방법론'이라 부르는 분야는 이러한 믿음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므로 과학적 방법론을 탐구하려면 우선 과학 지식 체계에 관한 철학자들의 생각부터 알아보아야 한다.
시나 소설을 쓸 때와는 달리, 과학 이론을 제시할 때에는 한 분야 내의 지식과 주장들이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특정한 체계를 이룰 것이 요구된다. 이제 그 '논리적 연결'과 '체계'라는 것이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과학이 목표로 삼는 것과 실제로 얻어 낸 이론들, 그리고 그 이론을 구체적인 방법들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지만, 과학 지식들이 어떤 체계를 이루어야 하는가에 관해서는 고대에서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거의 변하지 않는 표준이 있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원전 7세기경 탈레스의 등장을 시작으로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현상에 대한 사고의 틀을 신화적인 것에서 논리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으면서 과학적 사고의 물꼬를 텄다. 이 물결은 기원전 4세기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수학자 유클리드가 탄탄하게 정비해 놓은 '논리적 추론'과 '공리 체계'라는 표준 경로를 따라 오랜 세월 거침없이 흘러갔다.
논리적 추론이란 전제들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논리적인 방식을 뜻하며, 대표적인 것으로 연역 추론과 귀납추론이 있다. 연역 추론은 보편적 원리에서 개별적 사실을 이끌어내는 추론이며, 귀납 추론은 개별적 사실들로부터 보편적인 명제를 얻어 내는 추론이다.
이 중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하고 유클리드가 적극적으로 사용했으며 근대 과학이 완성되기 전까지 과학 방법론으로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것은 연역 추론이다. 연역 추론을 사용하는 논증의 방법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단 논법'이며, 이르 체계적으로 적립한 사람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