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과학이 완성되기 전까지 과학 방법론으로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것은 연역 추론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하고 유클리드가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연역 추론은 아래의 에와 같은 형태로 진행된다.
[명제 1] 모든 동물은 언젠가는 죽는다.
[명제 2] 지금 내 앞에 있는 모기는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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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제 3] 이 모기는 언젠가는 죽는다.
[명제 2]와 [명제 3] 사이의 선은 수학에서 사직연산을 할 때 굿은 줄과 비숫한 역할을 한다. 수식의 계산에서 줄 밀의 숫자가 답이 되듯이, 추론에서도 줄 밑의 문장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론식에서 줄 아래의 명제를 '결론', 줄 위의 두 명제, 즉 결론을 내리는 데 필요한 원리들을 '전제'라고 부른다. 그런데 [명제 1]과 [명제 2]는 모두 전제이긴 하지만 성격이 다르다. [명제 2]는 지금 내 앞에 있는 모기 한 마리에만 한정된 진술인 개별 진술인 데 반해, [명제 1]은 모든 동물에 관한 진술인 보편 진술이다.
이처럼 진술의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연역 추론에서 [명제 1]의 위치에 있는 전제를 '대전제', [명제 2]의 위치에 있는 전제를 '소전제'라고 부른다. 이 용어들을 사용하면 연역 추론의 일반적인 과정을 아래와 같은 식으로 규정할 수 있다.
대전제
소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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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연역적 추론은 위의 식처럼 크게 세 단계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연역 추론을 사용하는 논증의 방법을 '삼단 논법'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 삼단 논법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사람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연역 추론으로서의 삼단 논법을 강조한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위의 [명제 1,2,3]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내 앞에 있는 모기가 영원히 살 수 있는가의 여부에 관해 추론할 때, 동물의 영생 여부에 관한 대전제와 모기가 동물이라는 소전제가 모두 참이기만 하면 이 전제들에 의한 추론의 결과는 자동으로 참이 된다. 결론의 내용이 이미 대전제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제들이 모두 참이면 결론도 참이 보장되는 특성을 가리켜 '진리 보존적'이라 한다.
과학 지식은 여러 단계에 걸친 복잡한 추론들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철학자와 과학자에게 있어, 아무리 여러 번 추론을 거듭해도 진리가 계속 보존되는 추론 방식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제 하나의 진리 보존적 추론은 '대전제-소전제-결론'이라는 흐름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과학 지식은 여러 단계에 걸친 추론들이 얽혀 있는 체계라고 했으니, 그 개별 추론의 결과인 지식들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어야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알아보아야 한다. 오랫동안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유클리드의 [원론]으로 대표되는 기하학의 체제가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과학 지식 체계라고 여겨 왔다.
[원론]에서 유클리드는 절대적이고 직관적인, 그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즉각적으로 참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명제인 다섯 가지의 '공리'에서 출발하여 오직 연역 추론만을 거듭하여 여러 가지 참인 사실들을 증명한다. 이때 직관적으로는 참임을 알 수 없으나 참인 공리로부터 진리 보존적 연역 추론에 의해 증명되었으므로 참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알게 된 명제들을 '정리'라고 하며, 정리들은 또 다른 사실의 증명에 사용된다.
이런 식으로 절대적 참인 소수의 공리로부터 다수의 정리를 연역에 의해 이끌어내고, 또 그로부터 연역을 통해 더 많고 구체적인 사실들을 이끌어내는 체계를 '논리 체계'라 부른다. [원론]의 기하학은 거대한 공리 체계의 좋은 표본이다.
공리와 정리, 그리고 그들로부터 도출되는 구체적인 사실은 모두 참인 명제이지만 그 위상은 각각 다르다. 공리가 가장 근본적이고 정리는 그로부터 도출되고, 수많은 구체적 사실들은 공리와 정리로부터 도출되기 때문이다. 이치법 명제들이 지위에 따라 구분될 때 그 명제들로 이루어진 체계가 '위계적 구조'를 가진다고 말한다.
물론 기하학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경험적 관찰과는 관계가 없는 논리적이고 추상적인 학문이므로, 주변 현상을 관찰하고 그에 대한 설명을 하고자 하는 경험과학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유클리드 이후 약 2,000년 동안 과학 지식의 체계도 기본적으로는 유클리드의 공리 체제와 같은 위계적 구조를 가지야 한다고 여겨져 왔다. 이러한 생각을 가장 구체적으로 제시한 사람은 데카르트이다.